남한테 대던 자를 나한테 대봤다
이 글은 개인 공부 기록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저는 라이선스 있는 투자 자문가가 아닙니다. 특정 종목이나 코인을 사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제 기록을 제가 재본 방법에 대한 글입니다. 숫자는 제 계좌의 실제 체결 기록이지만, 표본이 매우 작아서 여기서 어떤 일반적인 결론도 나오지 않습니다. 판단과 책임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온체인에서 남의 지갑을 추적하는 걸 돌리고 있었다. **"잘하는 지갑을 따라 사면 돈이 되나"**를 확인하는 도구다. 지갑을 등록한 시점의 블록을 못박아두고, 그 이후에 일어난 매매만 세고, 가스비까지 빼서 채점한다.
그 화면에 이런 잣대를 붙여뒀다.
가장 크게 번 매매 하나를 빼고도 플러스인가?
승률만 보면 속는다. 어떤 지갑은 승률 30%인데 크게 플러스였다. 열 번 중 일곱 번 지고 세 번 이겼는데 벌었다는 뜻이고, 한두 방이 전부를 결정하는 분포다. 그런 지갑을 따라 하려면 그 "한두 방"에 반드시 타고 있어야 하는데, 그건 지갑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 문제다. 그래서 최고 수익 한 건을 빼고 다시 계산해서, 그래도 플러스인 지갑만 통과시켰다.
그렇게 남을 채점하다가 문득 이상했다.
나한테는 한 번도 이 자를 안 대봤다.
그래서 재봤다
증권사 체결 기록을 라운드트립으로 묶었다. 무포지션에서 시작해서 다시 무포지션이 될 때까지를 한 번으로 세는 방식이다. 분할 매수를 여러 번 했어도 다 팔면 한 건이다.
두 달치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이 표를 그날 처음 봤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9번 중 8번이 이겼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이 글의 진짜 주제다.
몰랐다는 게 왜 문제냐면
잘한 걸 모르면 잘한 방법을 못 지킨다.
같은 기간에 비트코인도 한 번 사고팔았는데, 팔고 나서 계속 아쉬웠다. 더 들고 있고 싶었는데 털어버린 것 같아서. 그런데 재보니까 이랬다.
- 30일 저점 근처에서 샀다
- 30일 고점에서 1.6% 안쪽에 팔았다
- 팔고 나서 오늘까지 가격은 판 값보다 아래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쉬웠다. 왜냐하면 팔 기준을 미리 안 정해뒀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채점을 못 하고, 채점을 못 하면 남는 건 기분뿐이다. 잘 팔았는데도 아쉬운 게 그래서다.
"감"이라고 부르던 게 감이 아니었다
나는 내 매매를 설명할 때 늘 "거의 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 분위기 보고, 이동평균선 조금 보고, 뚫을 것 같지 않으면 판다고.
그래서 그 "감"을 숫자로 재봤다. 각 체결 시점에 주가가 20일 이동평균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를 계산했다. 이걸 이격도라고 한다.
그랬더니 이렇게 나왔다.
매수 16건 · 20일선 대비 평균 -13.8% · 16건 중 15건이 선 아래
매도 9건 · 20일선 대비 평균 -8.2%
라운드트립 9번 중 9번, 간격이 좁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임
16번 중 15번이 20일선 아래였다. 이건 감으로 나올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리고 9번 중 9번 전부 같은 방향이었다.
내가 "사람들 분위기 본다"고 말하던 게 이거였다. 다들 패닉일 때가 가격이 평균에서 크게 벌어진 때다. 나는 그걸 숫자로 안 봤을 뿐, 일관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도는 진짜 감이 맞았다
매수 이격 범위 -24.6% ~ +4.2% 좁고 일관됨
매도 이격 범위 -17.2% ~ +7.4% 넓고 흩어짐
사는 자리는 규칙이 있고, 파는 자리는 없다. 팔고 나면 늘 아쉬웠던 이유가 여기 다 있었다. 기준이 없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나왔다. 주식은 떨어진 걸 사서 올라오면 팔았는데, 비트코인은 평균 근처에서 사서 크게 오른 다음에 팔았다. 방향이 정반대다.
둘 다 결과는 괜찮았다. 문제는 내가 두 개를 쓰고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나중에 자동화를 하려면 어느 쪽인지부터 정해야 하는데, 모르는 채로는 정할 수가 없다.
숫자를 감으로 정하지 않기
파는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이 정도면 팔자" 하고 숫자를 고르면 그것도 결국 감이다.
그래서 비트코인 일봉 3,298개(2017년부터 9년치)를 받아서, 20일선 이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분포하는지 재봤다.
절반 지점 +0.4%
상위 10% 지점 +12.3%
상위 5% 지점 +16.6%
상위 1% 지점 +27.3%
그리고 **내가 이번에 판 자리가 +13.9%**였다. 9년 기준 상위 7.8%, 즉 과열 구간이었다.
감이 정확했다. 그러면 규칙은 그 감을 부정할 게 아니다. 그 자리를 그대로 쓰면 된다.
감정과 싸우지 않는 규칙
내가 이번에 적은 매도 사유는 이거였다.
차익실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이건 규칙이 아니라 감정이다. 그리고 없앨 수 없는 감정이다. 전량 청산 규칙은 이 감정과 싸우는 구조라서 결국 진다. 어느 날 못 참고 규칙을 깬다.
그래서 분할로 정했다.
그리고 이 규칙은 내 이번 매매를 못 이긴다
만든 규칙을 이번 매매에 그대로 적용해봤다. 결과는 -0.52%. 내가 감으로 한 것보다 조금 나빴다.
이걸 문서 맨 앞에 적어뒀다. 다음에 규칙이 내 감보다 못한 결과를 내도 그건 예상된 것이지 실패가 아니라는 걸 미리 못박아두려고. 이걸 안 적어두면, 규칙이 한 번 지는 순간 규칙을 버리게 된다.
이 규칙의 목적은 수익을 키우는 게 아니라 채점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잘 팔았나?"에 답할 수 있게 되는 대가로 최고점을 포기하는 거래다.
내가 가져가는 것
- 볼 수 없으면 없는 것과 같다. 체결 기록은 계속 거기 있었는데, 보는 도구가 없어서 두 달 동안 내 성적을 몰랐다.
- "감"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 규칙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재보기 전까지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사는 쪽은 규칙이었고 파는 쪽은 진짜 감이었다.
- 규칙의 숫자는 내 기록에서 가져와야 한다. 남이 좋다는 숫자나 그럴듯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움직인 자리에서.
- 감정과 싸우는 규칙은 진다. 없앨 수 없는 감정이면 규칙이 그걸 수용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남한테 대는 자를 나한테도 댄다.
남의 지갑에는 "20건은 모여야 판정한다"고 해놓고 내 9번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그래서 내 성적표 판정도 통과가 아니라 표본 부족으로 달아뒀다. 승률이 높게 나왔지만, 그게 실력인지 그냥 시장이 받쳐준 건지는 9번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재보는 건 잘하고 있다고 확인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음에 비교할 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