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것 중에 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토스 앱 안에서 도는 미니앱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매달 주제를 걸고 챌린지를 하는데, 8월 주제가 **「하찮아도 괜찮아」**였다.
큰 문제를 푸는 대신 사람을 웃기는, 작고 귀엽고 하찮은 미니앱
8명을 뽑는다. 마감은 8월 26일. 나쁘지 않은 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만들어둔 걸 하나 다듬어서 내면 되겠다 싶었다.
정책 문서를 먼저 읽었다
읽길 잘했다.
- 디지털 자산·가상자산·NFT — 법적 요건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등록 불가
- 금융 서비스(증권·대출·보험·카드) — 인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불가
- 투자 자문, 특정 종목 추천, 유료 정보 제공 — 불가
- 사행성·베팅 — 불가
내가 지난 몇 달 만든 것들이 정확히 이 목록이다. 온체인 도구도, 지수 신호 대시보드도, 크립토 게임도 한 줄씩 걸린다. 재활용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법적 요건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우회로를 찾지 말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이건 문제가 아니었다. 주제가 "하찮은 거 만들어라"였으니까. 어차피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 못 내는 목록은 아무 상관이 없다.
두 번째 벽 — 게임으로 내면 인감이 필요하다
만들 걸 정하다가 게임 쪽을 봤다. 그러다 등록 안내에서 이 줄을 만났다.
게임은 등급 심의 증빙 자료를 꼭 제출해야 해요. 대표자 인감 또는 사인 이미지: 흰 종이에 인감 도장을 찍거나 서명한 뒤, 그 이미지를 첨부해주세요.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실명과 인감이 들어간다. 나는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이 경로가 막혀 있다. 2주 안에 될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비게임으로 내기로 했다. 대신 제약이 붙는다. 플랫폼이 주는 게임 리더보드를 못 쓰고, 라이트 모드로 고정이고, 무엇보다 심사에서 "이건 게임인데요"라고 판단되면 재분류될 수 있다.
여기서 재밌는 제약이 하나 생겼다. 게임처럼 보이면 안 되는 걸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시험을 보게 만들었다
「하찮은 자격증 발급소」.
아무 효력 없는 자격증을 시험 봐서 따는 앱이다. 도장이 찍힌 증서가 나오고, 그걸 모은다.
게임이 아니라 시험이다. 이건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 설계 원칙이 됐다. 화면에 "플레이"나 "점수" 같은 말을 쓰지 않는다. 전부 "응시", "합격", "불합격"이다. 우회하려고 시작한 프레이밍인데, 결과적으로 이게 앱의 개그를 만들었다.
지금 25종이 있다. 필기는 3지선다다.
저 멀리서 누가 뛰어온다. 나는 이미 닫힘 버튼을 눌렀다. 올바른 행동은? ① 못 본 척 정면을 응시한다 ② 열림 버튼을 누르고 아무 일 없었던 척한다 ③ 닫힘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확실히 한다
정답은 ②. 해설은 "누른 적 없는 사람의 표정을 짓는 것이 핵심이다."
실기는 앱 안에서 진짜로 해내야 한다.
- 라면 3분 지킴이 — 3분간 앱을 벗어나지 않기. 나가면 "면이 불었습니다"
- 체감 시간 감정사 — 화면에 아무것도 안 띄운 채 10초를 눈대중으로 맞히기 (오차 0.7초)
- 연타 절제 기능사 — 정확히 26번 누르기. 세어주지 않는다
- 적당히 계량사 — 눈금 없는 손잡이를 "적당히"에 맞추기. 정답은 62다
62인 이유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 그게 적당히다.
AI 둘에게 심사받았더니 아팠다
모델 두 대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주고 이 앱을 심의시키는 도구를 쓰고 있다. 한 대는 설계자, 한 대는 회의론자.
진단이 이랬다.
22종 중 17종이 똑같은 3지선다 루프다. 심사자가 몇 개만 봐도 나머지를 복붙으로 인식한다. 22칸 게이지가 오히려 그 반복을 광고한다.
나는 "필기는 텍스트만 쓰면 되니까 싸게 늘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정확히 함정이었다. 싸게 늘릴 수 있다는 게 늘려야 할 이유는 아니다. 양이 아니라 형식이 문제였고, 개수를 늘릴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필기를 더 쓰는 대신 시험 방식을 늘렸다. 위의 실기 넷 중 셋이 이 지적 이후에 생겼다.
둘이 정면으로 부딪힌 지점도 있었다. 증서를 이미지로 만들어 공유하는 걸 한 대는 1순위라 했고 다른 한 대는 3순위라 했다. 확인해보니 후자가 맞았다. 플랫폼 공유 함수가 문자열만 받는다. 앞의 모델은 문서를 안 보고 일반론으로 답한 것이었다.
떨어져도 증서를 준다
심의에서 나온 것 중 제일 마음에 든 건 이거다.
재응시가 무제한이라 실패가 그냥 버려진다. 불합격도 낙방 확인서로 발급해서 모으게 하라.
합격증과 같은 서식인데 인장이 덜 눌려 있고, 사선으로 「낙 방」이 찍힌다. 그리고 그날의 불합격 사유가 그대로 실린다.
낙방 제 0001 호
정밀 손끝 감정사
불합격
위 사람은 「정밀 손끝 감정사」 자격 시험에 응시하여 불합격하였음을 증명함
사유 — 중심에서 208px 벗어났습니다. 허용 오차는 14px입니다.
2026.08.07 · 누적 2회 낙방
새로 쓴 문장이 하나도 없다. 불합격 사유는 시험이 원래 만들어주던 것이고, 그걸 공문서 서식에 올렸더니 개그가 됐다. 주제가 「하찮아도 괜찮아」인데 실패를 버리고 있었다는 게 더 이상했다.
도장은 로컬 모델로 뽑았다
인장 25개는 맥북에서 이미지 모델로 만들었다. 순순히 되진 않았다.
"픽셀아트"라고 하면 픽셀아트를 안 그린다. 매끈한 벡터풍이 나온다. "8비트 스프라이트, 큼직한 사각 픽셀, 저해상도, 계단현상"까지 밀어넣어야 겨우 도트가 된다.
그래도 격자가 어긋나 있어서 후처리를 붙였다. 내용 영역만 잘라 정사각으로 맞추고, 격자에 스냅시키고, 단색으로 만들고, 배경을 투명하게. 그렇게 44×44 픽셀 원본이 나온다. 25개 합쳐서 5.7KB다.
작은 디테일은 끝내 안 살아났다. 문 손잡이를 세 번 다시 뽑아도 그냥 직사각형이 나와서, 노크 자격증의 인장을 주먹으로 바꿨다. 그림이 안 되면 소재를 바꾸는 게 빠르다.
각도는 난수로 정하지 않았다. 자격증과 발급번호를 해시해서 뽑는다. 다시 열었을 때 같은 자리에 찍혀 있어야 "그때 받은 그 증서"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안 냈다
만드는 건 거의 끝났고, 남은 건 콘솔에 등록하고 검수를 넣는 일이다. 마감까지 2주 넘게 남았다.
지난달에 마감을 하나 놓쳤다. 코드는 다 짜놓고 영상 촬영과 제출만 남은 상태에서 못 냈다. 그래서 이번엔 순서를 바꿨다. 재밌는 걸 더 만들기 전에 등록부터 하려고 한다.
만들다 만 것보다, 내지 않은 것이 더 아깝다는 걸 지난달에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