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묵힌 게임을 버리고, 하루 만에 새 게임을 배포했습니다 — 청산 서바이벌 개발기

고백부터 하겠습니다. 몇 주 동안 제 게임 프로젝트는 멈춰 있었습니다.
코인던전이라는 크립토 교육 게임을 만들고 있었는데, 형태는 카드 덱빌딩 로그라이크였습니다. 대회에 냈던 게임을 포크해서 리스킨한 거라 코드는 멀쩡했는데, 만들면 만들수록 이상했습니다. "청산 시뮬레이터"라는 세계관과 카드 게임이라는 형식이 서로 겉돌았습니다. 코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청산의 공포를 가르치겠다면서, 정작 게임에서 하는 일은 카드 뽑기였으니까요.
애정이 없으니 손이 안 가고, 손이 안 가니 몇 주가 갔습니다.
버리는 결정도 토론에 맡겼습니다
혼자 결정하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성향이 다른 AI 셋을 한 테이블에 앉히고 물었습니다. 덱빌더를 폐기해야 하는가, 한다면 뭘 만들어야 하는가.
폐기는 만장일치였습니다. 근거도 제 속을 후벼팠습니다. "컨셉과 형식의 부조화는 콘텐츠를 더 부어도 해결되지 않는다"고요. 대신 완전 삭제가 아니라 박제 — 지금 상태 그대로 URL만 옮겨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대회 제출본이라는 역사는 남으니까요.
새 컨셉은 셋이 하나씩 냈고, 제가 골랐습니다. 청산 서바이벌. 규칙은 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레버리지를 고르면 실제 비트코인 과거 차트가 재생되고, 청산가에 닿으면 죽는다.
교육 효과는 게임 룰 자체에 내장돼 있습니다. 100배를 고르면 청산까지 거리가 1%라는 걸, 설명이 아니라 3초 만에 용암에 빠지는 경험으로 배웁니다.
재료는 이미 다 있었습니다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었던 건 제가 빨라서가 아니라, 재료가 이미 쌓여 있어서입니다.
차트 데이터는 바이낸스 공개 API에서 BTC 5분봉 52,000개(약 반년치)를 받아 정적 파일로 박았습니다. 서버도 DB도 없습니다. 매 판 랜덤 구간에서 시작하니 같은 판이 두 번 나오지 않습니다.
그림은 전부 로컬 FLUX가 그렸습니다. 던전 게이트 타이틀, 동굴 배경, 픽셀 기사, 용암에 가라앉는 사망 일러스트, 금화 자루를 메고 탈출하는 승리 일러스트까지. 한 장에 10초 안팎, 비용 0원. 폰트는 도스 시절 감성의 갈무리 비트맵 폰트를 도트 격자 배수 크기로 맞춰서, 화면 전체가 레트로 게임처럼 각지게 떨어집니다.
물리는 단순합니다. 청산가는 화면 아래(숏이면 위)에서 넘실거리는 용암이고, 가격과 청산가 사이 거리가 체력바입니다. 체력이 25% 밑으로 떨어지면 화면이 흔들리고 붉은 비네트가 조여옵니다.
첫 시연 판정: "이거 너무 방치형 아니야?"
만들고 나서 제일 아팠던 피드백입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레버리지를 고르고 나면 할 게 없었습니다. 차트가 알아서 재생되고, 알아서 죽거나 알아서 삽니다. 게임이 아니라 스크린세이버였죠.
해결책은 크래시 게임(Aviator 같은 장르)이 오래전에 증명한 루프였습니다. 탈출 버튼 하나를 넣는 것.
차트가 도는 동안 버튼에는 실시간 수익률이 찍힙니다. "익절 탈출 · +9.6%". 누르면 그 수익으로 생존, 버티면 더 커지지만 캔들 하나에 전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버튼 하나로 모든 캔들이 "더 먹을까, 튈까"라는 결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방치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손실 중에는 버튼이 "손절 탈출 · -34.2%"로 바뀝니다. 손절하고 나오면 게임이 이렇게 말해줍니다. "손절도 탈출입니다. 청산보다 백 배 낫습니다. 실전에서 이걸 누를 수 있는 사람이 상위 10%입니다."

죽음도 자랑이 되도록
결과 화면에는 공유 카드 저장 버튼이 있습니다. 누르면 일러스트, 판정, 수익률, 버틴 시간이 박힌 카드 한 장이 PNG로 떨어집니다.

생존 카드보다 기대하는 건 사실 청산 카드입니다. "100배 롱, 실시간 3초 생존, 청산" 같은 카드는 그 자체로 밈이니까요. 죽음이 공유되고, 공유가 유입이 되는 구조를 노렸습니다.
마지막 함정: 배포했는데 사이트가 안 바뀐다
게임을 정식 도메인에 올리는데 마지막 미스터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Vercel CLI로 프로덕션 배포를 했고, 성공 로그도 봤는데, 실제 도메인은 여전히 옛날 게임을 보여줬습니다.
한참 뒤진 끝에 찾은 원인이 웃깁니다. 도메인이 물려 있는 곳은 지금 CLI에 로그인된 계정이 아니라, 예전에 GitHub 연동으로 만들어둔 다른 Vercel 계정이었습니다. 저장소에 매일 자동으로 찍히는 "daily redeploy" 커밋이 결정적 단서였고요. 그 계정은 GitHub 푸시를 보고 배포하는 구조라, 정답은 CLI 명령이 아니라 git push 한 방이었습니다.
배포가 안 바뀔 때 점검 순서에 하나를 추가하게 됐습니다. 빌드 로그보다 먼저, 지금 이 도메인을 서빙하는 게 어느 계정의 어느 프로젝트인지부터 확인할 것.
배운 것
1. 안 어울리는 컨셉은 콘텐츠로 못 살립니다. 몇 주를 붙잡고 있던 문제가 "형식을 버린다"는 결정 하나로 하루 만에 풀렸습니다. 버리는 결정이 무서우면 완전 삭제 대신 박제라는 중간 단계가 있습니다.
2. "방치형"이라는 판정은 버튼 하나로 뒤집힐 수 있습니다. 시청을 결정으로 바꾸는 장치가 핵심입니다. 제 경우엔 실시간 수익률이 찍히는 탈출 버튼이었습니다.
3. 에셋 자급자족이 하루컷을 만듭니다. 그림 여섯 장을 외주나 에셋 스토어로 해결했다면 하루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로컬 이미지 모델 세팅에 들인 시간이 이런 날 회수됩니다.
4. 배포 미스터리는 계정부터 의심하세요. CLI가 성공했다고 그 배포가 도메인에 반영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도메인 소유 계정과 배포 계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게임은 여기서 바로 해볼 수 있습니다: coindungeon.games/game
덧. 스스로에게 건 봉인이 하나 있습니다. 유저 10명이 완주하기 전까지 신규 콘텐츠 추가 금지. 지난 게임은 이 룰을 어기고 콘텐츠부터 부었다가 몇 주를 날렸습니다. 이번엔 다듬기와 유저 모으기만 합니다.